책 읽기

단어의 집 (안희연 산문집)

복숭아빛 시간 2025. 1. 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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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일 년 동안 보고 겪고 느낀 것들에 관한 기록이라,

너무 사사로워서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귀여운 에필로그에

끌려 읽게 된 책이에요^^ ㅎㅎ

단어의 집

너무 사사로워서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작가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주제마다 다 깊이가 있고 사색적이어서 놀랐어요.

그전에 안희연 작가님의 다른 산문집

'당신의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을 읽어서

비슷하다고 느껴질 법도 한데,

하나도 지루하다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러니 실망할 일도 없었고요^^;;ㅋ

일상적인 것들을 따듯하게 바라보면서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작가님의 시선은

늘 흥미롭고요~~ ㅎㅎ

나이가 들면서 가장 피해할 것이

삶을 관성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사는 세계를 다른 각도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많고 많은 것 중 '내 것을 골라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책 속 문구)

p.16

하기는 소망의 크고 작음을 분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크든 작든 하나의 소망에는 그 소망을 가로막는 심리적 물리적 장애물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길항'은 바로 그러한 싸움을 뜻하는 단어다. 이쪽의 우리가 간절해질 때 저쪽에서도 충돌할 채비를 한다. 쉽게 가실 수는 없을 거야. 시간의 횡포도 견뎌야 하고 인간이라는 한계에도 맞서야 할걸. 그렇게 애석해할 거 없어. 그건 세상의 구성 원리거든. 밀물과 썰물, N 극과 S 극,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봐. 버티어 대항하는 힘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어. (중략)

그러니까 소망은 크든 작든 원래가 까다로운 것이 맞다. 소망이 이전과는 다르게 감각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소망의 온도, 소망의 미래, 소망의 허기 등 소망의 정체와 의중을 폭넓게 고민하며 잠시나마 소망의 몸이 되어보기도 한다. 소망에도 극치와 역치가 있을 것이다. 극치는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로서의 소망일 것이고, 역 치는 삶을 자극하고 반응을 유발하는 최소한이 소망일 것이다.

P.32

말과 침묵이 비등한 무게를 지닐 대가 많고 때로는 침몰이 말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질 때도 있다. 글을 퇴고할 때도 무언가를 자꾸 덧붙이려는 나를 가장 경계하곤 한다. 그건 불안이니까. 사족이니까.

P.39

이 식물들이 우리 삶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탁해지지 않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지도 모르잖아,라는 말도. (중략)

결핍은 결핍대로 아름답다는 거, 아니 결핍이 도리어 빛나는 무늬를 만든다는 거, 평생 모르고 사는 일도 허다하겠지. 알아도 부정하느라 애먼 시간만 허비하겠지. (중략)

나타남과 드러남의 의미, 안 믿겠지.

그래 이 삽수들아, 그래도 헤아리며 살자. 나타나고 들어라는 저 모든 의미와 무의미 하나하나까지다.

P. 82

생활은 구체적인 결정과 책임들로 굴러가는 것이고 그래서 엄중할 수밖에 없으니 적어도 소망만큼은 추상의 자리에 두고 싶은 까닭이다.

P. 89

썩게 하는 힘, 감정이든 사람이든 시간이든 썩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마음들은 바로 그 순간에만 말이 된다.

P.228

어쩌면 세상도 우리를 들들 볶는, 아니 덖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보다 향기롭고 귀한 찻잎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중략)

이해되지 않는 걸 굳이 이해하려 힘 빼지 말고 그냥 안겨보자는 것, 찻잎이 물의 색을 변화시키듯 그렇게.


가벼운 산문집이지만, 가볍게 쭉 읽어 내려가진 않았어요.

물론 너무 비슷한 톤과 색깔에 조금 지루하기도 했었지만,ㅋㅋ

잘 몰랐던 단어들을 알고,

생소한 단어들을 친근감 있게 바라보게 되는 건

너무 좋았어요~~ ㅋㅋ

제 단어의 집에는 어떤 단어들이 있을까??

생각도 해보면서요~~ ㅎㅎ

언어는 나의 사유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내 단어의 집에도 좀 더 다양하고 많은

단어들을 넣어놔야겠다고 생각하며 읽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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