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복숭아빛 시간 2025. 7. 1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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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반자본주의??
( half?? or against??)
'반(半) 자본주의' ~??
아니면 '반(反) 자본주의'~ ??
혼자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며 시작한 책이에요^^
저자님이 아시면 ㅋㅋ
한심해서 혀를 찰지도요.ㅋㅋㅋ​

책 표지와 디자인도 2021년에 출판된 책 치고는
 팬시(fansy) 한 면이 없어서;;;
너무 자본주의적 느낌이 없다~~
라고 생각하며 ㅋㅋㅋ
읽은 책이에요 ㅋ
어쩌면 출판사의 의도였을지도요.ㅋㅋ

그런데 조금 지루하게 생긴 이 책이
생각보다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저 안쪽의 질문까지
꺼내주며...
튼 재미있게 읽었어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p.45

조그마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 것을 위해 한 개인은 그의 내면에서 일탈이 주는 위협과 싸우고 때로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소외와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이런 신비스러운 장치가 있고 그런 것을 발견해갈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p.93
푸른 숲 그늘을 노래하던 매미는 잠시 자신이 허물을 벗던 나무둥치, 그 메마른 허물 곁에 앉아본다. 한때는 그의 세계였던 허물, 여름과 녹음을 향한 꿈, 끝없는 비상이 꿈이 배태되던 허물은 이제 하얗게 바랜 흔적만으로 매달려 있다. (중략)
우리의 삶 자체도 언젠가는 벗어놓은 허물처럼 바랜 기억 속에만 남겨질 때가 올 것이 아닌가. 안쓰럽고 누추하고 가여운 것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변화를 겪고 이윽고 죽어가야 할 모든 존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p.97
그런 시간에 어머니와 노미 누나는 곧잘 이 '서거프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 한가하면서도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마음의 한순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말에서는 삶의 고단함, 우리 존재의 황량함이 묻어나고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모든 관심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잠시 외로 된 우리 존재의 쓸쓸한 실체를 의식했을 때 나오는 말이다. 그 순간은 우리의 의식이 크게 확장되는 순간이다. 그 고요한 순간에 우리의 의식은 잠시 존재의 뿌리에 닿고 삶의 근원에 닿는다. (중략)
이 고요를 우리 시대는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의식이 존재나 삶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길도 대부분 막히고 말았다. 의식은 항상 이것 또는 저것으로 향하고 있다. (중략)
아니 그런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런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이 다가오면 그것의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텔레비전을 켜거나 인터넷 접속을 하거나 잠을 자버린다. 고요 속에서 미세하게 가물거리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기를 우리의 의식은 이미 두려워하는 것이다. 


p.115
개인적으로는 책의 아우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책에 대해서 지나치게 연연하는 자세를 조금은 경멸하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모습은 책의 길을 다 섭렵하고 나서 그것이 일소된 내 한 몸에서 만의 성취라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p.125
요즈음 자라는 아이들이 어떤 내면적 풍경 속에서 자라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내면에도 나름대로 소중한 지향이 있다면 그 지향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의 우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이란 아직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하는 어린 영혼이 자기 자신 속에 깃든 희원을 잠시 타자 위에 투자함으로써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희원을 좇아 스스로를 성장시켜 가는 삶의 신비스러운 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p.173
어떤 유형의 인간에게는 삶의 체험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자기 일신에만 국한되지 않고 매우 심원한 관계망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심대한 자극으로 그의 영혼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다만 엄밀하게 볼 때 필요한 것은 상처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미만 한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 성실성이라고 바꾸어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땅 위에 상처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 광막한 우주의 상처가 아닌가! 단지 우리는 우리가 '보는'만큼의 상처를 가질 뿐이며 그런 방식으로 가지는 상처의 크기만큼 지혜와 인간적 연대를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희비애락에 노출된 인간의 삶은 드러난 상처와도 같다. 최후의 순간에 지혜는 그 모든 상처와 일체화된다. 정초에 입은 손의 상처도 이제는 단지 거뭇거뭇 한 흔적으로만 남았다. 마치 아물고 더치고 하며 언젠가는 이르러야 할 내 삶의 일체화를 가리키는 은유처럼.


p.254
무지를 극복하는 공자의 비방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가정할 수 있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무지의 영역은 끝없이 넓어서 그 극히 작은 일부를 정복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적 상태에 정직하고 솔직할 때에만 무지는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판단에 역설적으로 참여하고 그런 역설적 양상을 통해 무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무지가 여전히 무지 가운에 있으면서 정직과 성실과 끝없는 배움의 자세에 의거하여 드디어 무지를 넘어서는 역설, 그것을 공자는 앎이라 불렀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낯선 단어와 한자가 많아서
계속 찾아가며 읽었는데,,,ㅋㅋ
'이 정도는 알지?' 하듯
너무 담백하게 써 내려간 저자에게
'요즘 책들은 한자에 거의 주석이 달려있던데요..;;'
라며 투덜거리기 민망한 느낌이었어요.ㅋㅋㅋ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찾아본 많은 단어들이, 
그저 그런, 비슷비슷한 빛바랜 단어들로
채워 있는 제 단어의 방을
조금 넓혀 준 기분이었어요. ㅎㅎ

2061년에, 
76년 주기로 오는 핸리 혜성을
난 볼 수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처연하다는 느낌과 흔연하다는 느낌이
동시에 들까? 

이런 생각을 한참 하기도 하고요.ㅎㅎ

제가 생각하는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즐거움은
평소 만나기 힘들거나, 이야기 나누기 힘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기록의 위대함이기도 하고요.ㅎㅎ


자본주의 시대에서 
짧지만 강렬한 자본주의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저에게
군더더기 없고 가식이 배제된 삶이 주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생각해보게 해 준 책이에요.

이번 여름방학 동안
저자의 다른 책
논어의 발견을 읽어볼 생각이에요!ㅎㅎ

아이들과 정신없이 지내야 하는 여름학에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을 주길~~~ ㅋㅋㅋㅋ


'나의 초라한 자본주의' 
읽어보세요!!!
표지보다 제목보다 
재밌는 책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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